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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원 적금 푼돈 재테크 방법과 그 효과 경험담

파란만장 미스김 2019. 6. 26. 2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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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금 인생 시작

저는 적금이랑 정기예금을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부터 꾸준히 넣었습니다.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에는 무슨 생각으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아침 먹고 9시만 되면 그날 용돈 100원을 들고 새마을금고에 갔습니다. 매일 100원씩을 그냥 일반 계좌에 넣었던 거죠. 저는 올해 46세 입니다. 넉넉치 못한 시골살림에 유치원 안 다녀서 9시에 할 일이 없었나봐요.

 

그리고 초등학교 때도 명절에 친척 어르신들이 용돈 주시면 거의 그대로 조금씩 불입한 것 같습니다. 그때는 부잣집 친구들은 저축 많이 했다고 저축상도 주던 시절이었어요. 저는 아주 소액 저축했던 관계로 그런 상 받아본 적 없습니다.

 

중학생이 되기 전 봄방학 때 처음으로 정기예금이란 걸 새마을금고에 들었습니다. 중학생이 되면 은행 갈 시간이 없으니 봄방학 때 맞춰서... 그 당시만 해도 금리가 10%가 넘을 때였습니다. 그래서 대학 가기 전까지 매년 정기예금을 재예치하고는 했습니다. 얼마인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대학 갈 때 자취방 얻을 때 더해서 쓴 것 같습니다.

 

이후에는 직장생활하면서 적금이랑 정기예금을 들었지만 지금처럼 통장 수가 많지는 않았습니다. 지금도 사실 연말에 목돈 쓸 일이 있어서 거의 모든 적금과 정기예금이 9월부터 12월까지 만기로 맞춰져 있습니다. 카카오뱅크를 쓰지 않다가 금리가 다른 상품보다 높아서 작년 12월부터 이용하기 시작했어요. 저는 프리랜서 개인사업자라 수입이 일정치 않아서 예비비가 항상 필요해서 적금을 많이 넣는 것은 좀 부담스럽습니다. 그런데 카카오뱅크 적금은 1000원부터 가능하니 부담없이 넣을 수 있겠다 싶었죠.

 

온전히 나를 위한 적금, 적금 경쟁자 출현

온전히 나를 위해 쓰겠다는 생각에 하루 1000원 적금을 시작했습니다. 사실 1000원이면 1년 넣어도 36만5천원밖에 안 됩니다. 감질맛 나는 금액이죠. 아마 다 그러실 것 같아요. 제 나이 쯤 되면 자신을 위해서 저축을 한다기 보다는 대출 갚고, 애들 학자금 등등 다른 목적을 위해 저축을 하지요. 제 경우는 싱글이지만 집 한칸 가져보겠다고 용쓰고 있습니다. 저는 온전히 저만을 위해 여행용 자금 모으기 적금을 들었습니다. 한달 즘 지났을까, 가장 친한 친구를 만나 자랑을 했더니 그날밤 친구에게 카톡이 왔습니다. 자기는 하루 2000원 적금 그날 시작했다고...

 

친구가 저보다 2배로 적금을 하니 저 보다 늦게 시작했는데 어느 순간 더 많은 돈을 모았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비수기 시즌 생활비도 조금씩 모을 겸 1000원 푼돈 적금을 또 만들어서 지금은 1000원 짜리 푼돈 적금을 3개 키우고 있습니다.

 

매일 자동이체 메시지로 각오 다지기

출금 메시지

매일 아침마다 3000원이 자동이체로 빠져나가고 있습니다. 그러면 카뱅에서 출금메시지가 날아옵니다. 처음에는 메시지가 맨날 3개씩 날아 오니까 귀찮아서 안받을 수 없나라는 생각도 했어요.

 

저는 프리랜서이기도 하고 아침형 인간이 아닌지라 점심시간 즘 사무실로 출근을 합니다. 10시 즘 자동이체 출금 메시지가 오면 일하기 싫고 출근하기 싫다가도 내가 이러면 안되지, 오늘도 부지런히 일해야지라는 동기가 부여가 되었습니다. 나는 오늘도 일하러 갔고, 나를 위한 저축을 했고, 나는 점점 행복해질 것이다. (사실 제 꿈은 파이어족 ^^;;)

푼돈 재테크의 의미는 그런 것 같습니다. 이걸 통해서 큰 돈을 모으겠다라는 것보다는 언젠가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을 위해서 나는 오늘도 포기하지 않았다는 사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아주 작지만 노력했다는 사실... 나는 오늘도 열심히 살았다는 뿌듯함을 주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 힘들어도 무리하지 않는 수준에서 작은 노력을 하고, 또 나에게 주는 상을 만들어 보아요.

참고로 카카오뱅 이자가 점점 낮아지고 있어요. 금통위에서도 금리를 낮출지도 모른다니 어느 은행이건 간에 적금이나 정기예금 6월이나 7월초에는 하나 들어두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오늘도 자본주의의 노예이자 파이어족을 꿈꾸는 미스김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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